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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 방방곡곡 노포기행] 방짜징 장인의 손길, 샐러드 담는 놋그릇으로 48 2021-05-13

2021.04.10 한국일보


<56> 거창 정장논공단지 두부자공방 
살균, 항바이러스 효과 웰빙 바람 타고 생활유기 인기
공장 갖추고 디자인 입혀 반상기, 혼수용품 등 다양화


두부자공방은 디자인을 입힌 다양한 생활 유기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경동 대표가 자신이 개발한 샐러드 접시를 들어보이고 있다.



광주대구고속도로에서 거창나들목을 빠져나와 남상면 쪽으로 우회전하면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위치한 정장농공단지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1985년부터 전통 놋그릇과 징 등 각종 유기제품을 만들고 있는 '두부자공방'을 만날 수 있다. 공방을 이끌고 있는 이경동(56) 대표와 경남도 무형문화재 제14호 징장이자, 그의 부친 이용구(86)옹이 운영하는 공방이다.



온갖 난관 헤치고 무형문화재로...


유년시절 의붓 삼촌 손에 이끌려 경남 함양 징점에서 잔심부름을 했던 이옹은 10대 후반부터 당대 최고의 징 장인이었던 대정 오덕수씨 밑에서 본격적으로 징을 배웠다. 한겨울에도 작업장에서 한뎃잠을 마다않고 십수 년 동안 기술을 익혔지만,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1968년부터 함양 안의면에서 직접 운영하던 징점을 정부규제로 접어야 했고, 상경해 서울에서 유기를 만들어 팔았지만 다시 난관에 봉착해 1984년 낙향했다.

심기일전해 거창에서 두부자공방을 차린 이옹은 방짜기술을 다시 갈고 닦아 마침내 1993년 경남도 무형문화재 제14호 ‘징장’으로 지정돼 오 대정을 잇는 장인의 반열에 올랐다.

지금 이옹은 일선에서 물러나 자문역할만 하고 실제 공방 경영은 이 대표와 아들 상석(26)씨가 맡고 있다. 자연스럽게 '두부자'는 두 세대를 지나고 있는 셈이다.



이경동 대표가 한옥 전시체험관에서 방짜징 제조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지금도 이 체험관에서는 일년에 2, 3번 방짜징 제조 시연회가 열린다.



방짜징의 제작은 음력 11월부터 이듬해 2월 농한기에 주로 이뤄졌다. 대정, 가질대장, 앞마치꾼, 전마치꾼, 쇠마치꾼, 풀무꾼 등 6명이 한 조가 돼 섭씨 1,000도를 넘나드는 화염 옆에서 숨소리까지 맞춰가며 고된 작업을 해야 했다. 수천 번 망치를 두드려 모양과 두께를 맞춰 나가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대정은 징 제작의 최고 기술자로, 전체 공정을 감독하며 징의 소리를 결정하는 울음 잡기를 맡는다. 가질대장은 징에 나무 나이테 모양의 문양을 새기고 광을 내며, 손잡이 구멍을 뚫어 끈을 맸다. 앞마치꾼, 전마치꾼, 쇠마치꾼은 망치질을 하는 3명의 장인이며 풀무꾼은 화덕의 불 온도를 높이기 위해 풀무질하는 장인이다.

이 같은 전통 제조과정은 지금도 1년에 2, 3번 정도 초등학생 등을 상대로 한 시연회에서 풍물놀이와 망치질 체험을 곁들여 재연되고 있다. 시연회는 두부자공방의 자랑거리인 한옥체험관에서 열린다. 이곳에서는 방짜유기 제조과정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대정과 매질꾼 등이 작업하는 자리를 잘 구분해놓았다. 거창군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도 이 한옥체험관은 인기 견학코스가 되고 있다.


두부자공방은 고객들의 맞춤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공장형 생산방식으로 전환했다.

직원이 소리를 잡기 전에 징의 원형을 다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웰빙붐 타고 디자인 입은 놋그릇


최근에는 유기제품 대부분이 매질꾼의 망치질을 기계가 대신해주는 방짜 열단조 방법으로 제작되며 전통 방짜 공정을 통해 제작된 제품은 '작품' 정도다. 이 때문에 흔히 공방하면 아기자기한 좁은 공간이 연상되지만 두부자공방은 어엿한 공장 모양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징을 만드는 작업만큼은 원형을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다. 구리와 주석을 7822로 섞은 금속(놋)을 펴는 '눕힘질'을 거쳐 모양을 잡는 '우김질', 각도를 잡는 '부질', 벌겋게 달궜다 찬물에 담그는 '담금질', 작은 망치로 형태를 잡는 '트집잡기', 첫 소리를 잡는 '초울음', 표면을 깍고 줄을 놓는 '가질', 망치 두 개로 안팎을 두드려 소리를 잡는 '울음' 등 까다로운 공정을 거친다.

두부자공방에는 이 대표 등 7명의 직원들이 징 등 제품 제작에 매달리고 있다. 까다로운 공정만큼 개당 가격이 대부분 100만 원을 웃도는 징은 종류도 다양하다.

주로 야외에서 연주하는 농악과 실내에서 연주하는 사물놀이, 무속, 사찰 등 용도에 따라 소리도 제각각이다. 또 지역, 치는 장소, 연주자에 따라 원하는 소리가 달라 구매자가 오면 가운데가 두껍고 점차 모서리쪽으로 얇아지는 징을 직접 두드려 보게 해 소리를 맞춰준다.

두부자공방의 징은 국립국악원에 표준음으로 전시되고 있으며, 김덕수사물놀이패도 이곳 징을 사용한다.

1995년 무렵부터 놋그릇이 살균은 물론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는 것으로 매스컴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생활유기 붐이 일자 두부자공방도 일반인들의 수요가 많은 맞춤유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방짜징 제작 시연회가 열리는 한옥 전시체험관.



이 대표는 "전통도 지키면서 달라진 고객 수요에도 부응하기 위해 옛날 방식만을 고집하지 않고 단가를 맞추기 위해 대량 제작방식도 적절히 가미해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맞춤유기 제작을 늘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징을 응용해 다소 작게 만든 징표면에 글을 새기는 상패나 밥그릇 국그릇 등 반상기세트, 수저세트, 찻잔, 혼수용품, 장식품 등으로 미려한 디자인을 입혀 제품을 다양화하고 있는 것이다.



판매는 고객대면 방식 고수… 서울에도 전시장


고급 한식당 등에서의 반상기세트 주문도 늘고 있다. 한식당 등은 고풍스러운 유기그릇에 음식을 담으면 음식의 품격이 높아지고 음식점의 이미지도 높일 수 있어 수요가 늘고 있다. 하지만 무게가 무거운 놋그릇의 특성상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는 두께를 줄여야 하지만 너무 얇으면 쭈그러지기가 쉬워 적절한 두께를 유지해야 한다. 이 대표는 주문받은 외식업소에 직접 방문해 유기를 전달하고 친절히 유기사용법도 알려주고 있다.

또 유기가 예술적 취향을 갖춘 고품격 그릇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함에 따라 대기업 중심으로 VIP선물용 주문도 늘고 있다. 김 대표는 최근에는 놋쇠를 이용한 팔찌 반지 쌍가락지 등 장신구도 시범제작하는 등 생산영역을 넓히고 있다.

예전엔 제기 등 유기는 관리가 힘들었다. 색변현상이 심해 기왓장을 깨서 가루를 짚에 묻여 닦았다. 김 대표는 "요즈음 생산되는 제품은 색변이 훨씬 덜하지만 토마토 케첩을 묻여 수세미로 닦으면 아름다운 색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부자공방은 2003년 미국, 2008년 프랑스를 순회하며 우리나라 전통 유기를 널리 알려 전 세계인들의 높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공방의 역사가 80년에 달하는 만큼 유기를 제작하는 방법과 주요 제품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많이 달라졌지만 두부자공방은 온라인쇼핑이 대세인 요즈음에도 판매방식만큼은 고객 대면을 고수하고 있다. 온라인판매를 하면 대량판매는 가능하지만 품질이 떨어질 우려가 높다는 판단에서다.

두부자공방은 정장공단 본사와 서울 통인시장 인근에 전시장을 두고 있다. 서울 전시장인 '놋그릇 가지런히'는 이 대표의 부인 김순영씨가 운영하고 있다.

거창=글·사진 김창배 기자 kimcb@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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